암호화폐(cryptocurrency)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얼마 전 암호화폐에 대한 유시민 작가와 정재승 교수의 논쟁이 인터넷을 달군 바 있다.
유시민은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비트코인 투자를 말리고 싶다면서 암호화폐는 화폐로서 가치가 없는 투기의 대상일 뿐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하여 정재승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유시민 선생님이 블록체인을 잘 모르는 것 같다”면서 “주식투자가 과열되었다고 거래 자체를 금지하는 것과 같다”며 비트코인을 주식에 빗대어 설명했다.
이어 그는 과열된 시장을 잠재우기 위한 투기억제 정책에는 찬성하지만 국가가 블록체인 기술을 과도하게 통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 논쟁에서 유시민과 정재승의 글은 서로 다른 논점을 향해 달리고 있다.
유시민은 ‘화폐란 사회적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라면서 “엔지니어들이 화폐가 무엇인지 잘 몰랐다”고 일갈했다. 유시민은 화폐가 중앙정부에서 발행하기 때문에 안정적 가치를 얻을 수 있지만, 암호화폐는 가격등락이 심해 화폐로서 기능을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재승의 주장은 빈대 잡다가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하지 말자는 취지로 요약된다.
사실 충남일보, 한겨레신문 등 많은 언론사에서 비트코인을 규제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논지를 펼치고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스티글리츠와 폴 크루그먼조차도 비트코인 버블의 위험성을 경고한다는 점이다. 특히 폴 크루그먼은 2013년 뉴욕타임즈의 칼럼에서 ‘비트코인은 악이다’라고까지 강력하게 비판한 바 있다. 스티글리츠는 ‘비트코인에는 사회적 기능이 없다’면서 암호화폐의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먼저 유시민의 주장을 한 번 뜯어보자.
유시민은 화폐가치의 안정성을 중앙은행에서 보증하지 않는 암호화폐는 그 가치가 지나치게 유동적이어서 화폐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이 처음부터 있었다면, 화폐는 필연적으로 중앙은행을 필요로 했을까?
필자는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유시민은 지금 존재하는 화폐가 아닌 새로운 개인간(P2P) 화폐거래의 가능성 자체를 부인한다. 발전된 기술이 화폐의 개념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을 유시민은 간과하고 있다. 마치 버스에 차장이 없으면 버스 승객이 교통카드 찍는 것을 어떻게 일일이 확인하느냐는 말처럼 들린다.
또 하나의 논점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들의 견해는 ‘중립적’인가 하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현재 달러는 세계 기축 통화이며, 위안화나 유로가 달러의 기축통화를 위협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달러의 위상은 강건하다.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미국이 극복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은 달러를 찍어낼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어쩌면 경제학자들은 비트코인 투기로 자산을 잃어버릴 사람들보다,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흔들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도 가능하다.
암호화폐 시장은 이미 하루 거래량이 코스닥 총 거래량을 상회한 적도 있을 정도로 과열되어 있다. 얼마 전 법무부 장관이 “암호화폐가 투기로 변질되었다”면서 “거래소 폐쇄를 추진한다”고 밝히면서 전 세계 암호화폐 시장에서 순식간에 시가총액 110조 원이 증발한 바 있다. 이어 청와대 관계자가 법무부장관의 발언을 부인하면서 비트코인의 가격은 빠르게 회복되었다.
과열된 시장의 정상화를 위한 규제는 필요하다. 그러나 투기 잡겠다는 명목으로 거래소 폐쇄와 같은 극단적 규제를 강행할 경우, 그 피해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특히 시가총액의 증발과 같은 유형의 피해보다는, 블록체인 기술 자체의 발전을 저해하는 무형의 피해도 발생할 수 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 삼간 태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