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시론] 밥하는 ‘동네아줌마가 된 학교 급식실 조리사’
[충남시론] 밥하는 ‘동네아줌마가 된 학교 급식실 조리사’
  • 임명섭 주필
  • 승인 2017.07.19 16:0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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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이 강진에 유배당한 초기에 밥 파는 노파에게서 밥을 대어먹었는데 노파가 넌지시 다산에게 물었다. “왜 남자는 귀한 대접을 당연히 받고 여자는 천한대접을 받아야 하는가냐?”고.
다산은 “남자는 씨앗이고 여자는 밭이라 했으니 이는 모든 곡식과 초목이 밭에서 자라고 가꿈을 받으니 세상에 여자가 더 귀하게 대접 받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이 말은 노파가 다산에게 밥상을 건네지 않는다면 다산은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쓰러질 것임을 말한 것이다.다산이 노파와의 토론에서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친구에게 이를 편지로 알려주었다.
이것은 여성의 노동이 세상의 큰 가치임을 현장 노동자가 책상물림에게 일깨워준 사례다.필자의 경우는 그 당시에는 학교 급식이 없어 학교를 파하고 곳장 집으로 달려오면 배가 고팠다.
부엌에 들어가 솥뚜껑을 밀면 아직도 김이 모락거리는 밥이 그릇에 담겨있었다.달고 구수한 밥을 입에 넣고 총각김치 한 가닥을 씹으면 세상이 내 것이 되는 듯 했고 그사이에 배가 찻다.
밥은 그렇게 내 배를 채우고 힘이 되어 주었다. 어머니가 지어놓은 밥에 대한 향수는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따스한 밥에 가려진 어머니의 고된 노동은 대부분 감추어져있다.
그냥 헌신, 사랑, 자애 그런 것으로 포장되고 진정 드러나야 할 젖혀진 허리, 불거진 손마디 같은 노동의 흔적은 감추어 버려졌다. 물론 어머니는 그런 것을 드러내지 않고 자식의 입에 밥 떠 넣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자식 입으로 밥 들어가는 모습만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렇게 무시할 수도 무시해서도 안 되는 밥과 그 노동에 대해 우리사회 일각의 일그러진 시각이 드러나는 일이 벌어졌다.밥을 먹어야 생명을 유지하는 신비한 밥심의 힘으로 노동을 하고 또 그대가로 밥을 얻게 된다.
그런데 그 밥이 요즘처럼 천대받는 경우도 드물다. 밥을 만들어내는 쌀 생산 농민들이 천대받고 밥을 짓는 여성노동자들이 천대받는 세상이 됐다. 최근 공당의 수석부대표가 밥을 만드는 노동자들을 향해 막말을 쏟아 부어 파문이 일었다.
이 의원은 학교 급식실 조리사를 놓고 ‘동네아줌마’ 발언이 부적절한 표현으로 인터넷의 검색어를 뜨겁게 달구었다. 파업에 참가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그냥 동네 아줌마들이고 밥하는 아줌마가 왜 정규직화가 돼야 하는 거냐?”고 말해 여론의 화살을 맞았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향해 그냥 돈 주고 일하면 되는 건데. “조리사라는 게 아무 것도 아니거든”이라는 발언에 노동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전국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등은 이 의원은 의원직을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이 의원은 사태가 심각해지자 ‘동네 아줌마’ 발언은 “부적절한 표현으로 상처를 받은 분들께 죄송하다”고 사과했지만 진화에는 역부족였다. 직접 피해자인 급식실 조리사는 물론이고, ‘간접 피해자’인 요양보호사, 간호조무사, 전업주부 등 까지 이 의원에 대해 쓴소리가 거세졌다.
‘동네 아줌마’ 발언 파문은 여러모로 씁쓸하다. 같은 말이라도 어 다르고 아 다르다.이 의원의 ‘동네 아줌마’ 발언 파문의 여파로 학교 비정규직 문제가 지나치게 단순화 되는것도 눈에 거슬린다.
이번 파문과 관련해 한 정치인은 “머리를 쓰나 손을 쓰나 발을 쓰나 모두 귀한 노동이고 노동자의 권리”라는 말이 맞다. 학교에는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만 있는 게 아니다.
‘서무 선생님’이나 ‘양호 선생님’도 있다. 일터가 학교라는 이유로 공무원연금이나 사학연금 수혜자가 됐다. 때문에 학교 급식 노동자의 정규직화 종착점은 ‘급식 조리사’도 마찬가지다.
말이란 생각을 나타내는 것이다. 밥이나 하는 아줌마라면 그 바탕으로따지면 청소나 하는 아저씨, 집이나 지키는 경비놈, 건설 현장에서 노가다나 하는 놈, 농사나 짓는 농사꾼으로 이어지는 반사회적 일이다.
노동의 가치나 인권은 안중에도 없는 생각할수록 괘씸한 발언이다. 국회의원의 갑질 인생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밥 하는 일,그 숭고한 노동이 없었다면 우리가 지금의 우리로 자라지 못했을 것이다.
한 끼 밥의 감사함을 밥이 내게 오기까지의 노동의 감사함을 모르는 인간은 배은망덕하다. 밥하는 엄마의 감사함을 인정해주지 않는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니 우리를 키워온 앞으로 아이들을 키워갈 그냥 밥하는 동네 아줌마들께 감사함을 갖고 살자.
그것이 우리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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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직딩 2017-07-20 09:37:51
훌륭한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