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중 칼럼] 비정상의 종언(終焉), 그리고 새 출발
[김강중 칼럼] 비정상의 종언(終焉), 그리고 새 출발
  • 김강중 선임기자
  • 승인 2017.03.14 17:42
  • 댓글 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21분, 헌정사 최초로 대통령이 파면됐다. 헌재 재판관 전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했다. 지난해 12월 9일 국회 의결로 소추된 대통령 탄핵은 이렇게 종언(終焉)을 고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가치를 구현한 것이다. 얻은 게 있다면 잃는 것도 있는 게 세상의 이치다. 탄핵 여부를 떠나 국민들에게 부끄러운 상처를 남겼다. 민주주의 성장통이라 자위해도 그 파랑(波浪)은 너무나 컸다.

이 시각 운전 중이던 필자는 한 후배로 부터 전화를 받았다. 대통령 탄핵을 놓고 소주내기를 걸었던 터였다. 그 후배는 완패를 자인한다며 탄핵 인용소식을 전해왔다.
그는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구속, 권선택 대전시장의 선거법 고법 판결에서도 2차례 고배를 마셨다.
우스갯소리로 장의사, 변호사는 남의 불행으로 먹고산다고 한다. 남의 불행을 놓고 내기를 하자니 안쓰럽고 민망했다. 그러나 기자로서 세상을 보는 관점과 신념의 가치가 빗나가지 않았음은 야릇했다.

그 날 저녁, 법학을 가르치는 오랜 친구와 술자리를 함께했다. 견해와 소신이 달라 금기했던 정치적인 문제도 안주에 올랐다. ‘대선’ 주자의 삶의 궤적, 정치지형을 가늠하며 이슥토록 폭음했다. 결론은 군주민수(君舟民水)이고 역천자망(逆天者亡)으로 정리됐다.
감회라면 1987년 직선제 개헌과 2002월드컵 당시와 비슷했다. 그 때 히딩크가 있었다면 박영수, 이정미, 손석희가 있어 가능하지 않았을까. 사법부와 언론이 썩었다 해도 이들이 대한민국 희망의 싹을 틔웠다.
한편으로 탄핵은 또 다른 과제를 남겼다. 사저로 돌아 온 실패한 대통령은 친박의원을 통해 대국민 메시지를 전했다.

‘대통령 소명 마무리 못해 죄송’, ‘지지하고 성원해 준 국민께 감사’,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란 내용이다. 탄핵으로 빚어진 사과나 치유의 언급은 없었다.
인용 결정을 ‘수용’하되 ‘승복’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또 특검수사와 헌재를 외면하고도 진실 규명을 강조했다. 지독한 형용의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어찌됐든 국가 지도자는 진퇴가 분명해야 한다. 특검 수사나 탄핵과정에서 의연한 지도자의 면모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내내 실망스럽고 아쉬웠다.
혹여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닐까.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로 낙향하고도 찾는 열화의 지지자를 생각한 듯싶다. 퇴임 대통령이 이명박 현임 보다 더한 인기를 구가했다. 2명의 대통령을 둔 듯한 그런 상황이었다. 또 박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 총선에서 친위세력이 대거 축출됐다. 하지만 ‘친박연대’로 건재를 과시했다. 다시금 이를 꿈꾸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일까. 박 전 대통령은 삼성동에 운집한 태극기 물결에 탄핵 부당성을 알리며 결기를 보였다.
‘촛불’과 ‘태극기’로 양분된 분열을 통합할 것이란 기대는 난망했다. 곧 있을 ‘대선’과 내년 지방선거에서 권토중래로 비쳐졌다.
돌아보면 아쉬운 점은 또 있다. 그것은 5년 전 박 전 대통령의 대전역 첫 유세였다. 그 곳에서 국민 화합을 위해 전국에서 퍼온 흙과 물로 합토·합수식을 가졌다. 당시 매우 신선했고 기대감이 컸다. 이런 바람은 권력의 중독과 ‘친박’의 장막에 가려 한낱 허울로 끝났다.
대신에 고질병인 ‘보·혁’의 대결, 지역, 계층, 세대 간 갈등은 커졌고 경제 민주화 다짐도 방기했다.

송로버섯과 삭스핀을 즐기는 ‘그들만의 리그’는 절망과 냉소를 야기했고 국정농단의 결과를 낳았다.
정권이나 개인이나 성공은 그릇이 넘는 것이고 실패는 그릇을 쏟는 것에 비유된다. 넘는 물을 즐기는 도취가 성공이라면 실패는 빈 그릇이다. 그래서 성현들은 과유불급의 성찰을 일깨우고 있다.
무엇이 이토록 일그러진 대한민국을 만들었을까.
무소불위 권좌, 세습의 재벌, 검찰의 권력, 기레기 속성의 언론 탓일까. 아니면 영악한 관료주의 때문일까. 이들로 대변되는 기득권 세력의 만연한 적폐라는 진단이다. 중앙이든 지방정부든 정도 차이만 있을 뿐 대동소이하다.
그 적폐로 우리의 현실은 국가 존망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보혁’ 대결에 에너지를 허비하는 사이 정치, 경제, 안보, 사회의 분열은 도를 넘었다. 벼랑 끝에 몰린 민생의 해법은 없어 보인다.

설상가상 격절스런 국제정세는 대한민국을 삼킬 듯 넘실대고 있다.
우리 역사가 그랬듯 내부의 적이 망국을 초래했다. 그것은 부패와 분열이다. 우리는 남북이 70년 넘게 동강난 채 이제는 핵전쟁을 우려하고 있다.
그런데도 어설픈 보수, 진보는 아랑곳없이 분열 조장에 여념이 없다. 정강, 정책 보다는 묻지마식 ‘빅텐트’, ‘선의’, ‘연정’을 운운하며 계책에 분주하다.
다시 봄이다. 3월은 출발이고 행진이다. 이제 대한민국도 새 출발을 할 엄중한 시기이다.

강자들의 카르텔이 아닌 수평의 공리(公利)사회를 모색해야 한다. 이것이 겨우내 외쳤던 촛불의 시대정신이다. 이제 파사현정((破邪顯正)으로 품격 높은 대한민국으로 거듭나야 한다.
다행히 박근혜 정부 뒤에 성군(聖君)이 나온다고 했다. 그것도 거명되는 후보군이 아니라 혜성처럼 나타난다고 한다.
제도일까, 사람일까. 더욱 기대되고 설레는 봄이다.

[충남일보 김강중 선임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4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만중 2017-03-17 09:50:57
카르텔이 아닌 수평의 공리사회 구현에 많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안녕 2017-03-16 19:04:15
탁견에 경의를 표합니다

이순신 2017-03-15 18:51:43
대한민국의 기자들이여 대전에 이렇게 현실적인 논평을 보아라 시원하고 설득력이
있음에 감사^^~

최상렬 2017-03-14 21:34:23
지성인은 역시..
설득력 있게 표현하네.
우리나라 현주소를 알려줘
고맙습니다.
그 누구를 부정하지말고..
국민을 위해 대통령될분은..
자기 소신을 밝히는것이...
우선이됐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