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중 칼럼] 2016 민도(民度)와 정치 수준
[김강중 칼럼] 2016 민도(民度)와 정치 수준
  • 김강중 선임기자
  • 승인 2016.12.06 1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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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우려했던 병신년(丙申年)이 저물고 있다.
다사다난이라 하기에는 턱없고 격절스런 2016년이다.
지난 6차 촛불집회에서 미래 세대의 미더운 모습은 가슴이 벅찼다. 기성세대가 이뤄내지 못한 통일도 해낼 것이란 희망도 느껴졌다.
하지만 누군가는 촛불 집회를 북한의 집단 예술공연에 빗대고 마녀사냥이라고 폄하했다. 국민은 전문가 수준인데 정치를 비롯 각계의 평균하향은 분명해졌다.

‘일그러진 영웅’이든 ‘일그러질 영웅’이든 민의의 도도함에 매몰됐다. 또 촛불이든 횃불이든 그것이 중요한 일인가. 그 곳에서 반듯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다짐이 중요한 것이다.

대통령의 하야를 바라고 국민의 뜻을 받들어 국가를 개조하라는 외침이 팩트다.
차제에 ‘헬조선’이란 이 나라의 젊은이들이 희망과 꿈을 되찾아야 한다. 우리는 진정한 보수도, 진보도 없다. 그들은 정치적 야욕을 위해 종북(從北), 종미(從美), 반일(反日),친일(親日)이니 싸우면서 국민들은 골병만 들었다. 민의의 종민(從民)은 없었던 것이다.

돌아보면 200년 전 조선말 사회도 오늘의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산(茶山) 정약용은 원정(原政)에서 ‘정치란 바르게 하는 것이고 백성을 고루 잘 살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왕조시대에도 공정한 사회를 꿈꾸었다. 백성들의 가치를 존중하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기를 염원했다. 배분의 경제사회도 추구했다.
그래서 실천적인 행동을 통해 세상을 바꾸겠다며 실학사상을 부르짖은 것이다.
하지만 병약한 조선 왕조와 기득권 세력은 개혁안을 거부했다. 쇠락의 조선은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자초했다. 결국 일본에 먹히는 역사를 만든 것이다.

35년 질곡 끝에 세계사 흐름에 편승, 광복을 맞았다. 이내 ‘분열’과 ‘부패’의 원조격인 두 진영의 싸움은 민족을 갈라놓았다.
이것이 외세에 놀아난 근대사의 족적이다. 이쯤이면 미·중 패권에 벗어날 민족의 혜안을 모아야 할 중차한 시기이다.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된다고 했던가. 200년이라는 격동의 세월이 흘렀으나 부패한 정치, 경제적 구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래서 매주 토요일이면 국민들은 광화문에 집결, 대통령의 퇴진과 새누리당 해체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은 눈물겨운 싸움을 하고 있으나 여야는 안중에도 없고 그들의 영달만을 도모하고 있다.
꼴사납게 국민의 외침을 멋대로 해석하며 대권 선점의 술수만 부리고 있다.
현 정치상황을 바둑판에 비유를 해보자. ‘궁변통(窮變通)’ 박근혜 대통령은 퇴임시기를 국회에서 결정해 달라며 착점했다.

새누리당은 4월 퇴진, 6월 총선을 응수하며 시간끌기로 화답했다. 대마불사를 되뇌며 반전을 노린 듯하다.
신의 한수가 될지, 장고의 악수가 될지 두고 볼 일이다. 불계판에서 상대의 실수를 바라는 시간벌기 꼼수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진정한 지도자라면 돌을 던지고 불계를 선언해야 옳다. 이런 결정이 지지했던 국민에 대한 보답이고 예의가 아닐까.

눈비를 맞으며 상처난 자존심을 되찾으려는 가상함이 눈물겹지도 않은가. 유모차를 타고 나온 아이와 어린 학생들에게 이런 나라를 물려줄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의 역사가 그랬듯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국민은 들불처럼 일어나 구해냈다.
이렇게 지켜 낸 국가의 권력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 권력의 남용은 ‘완장’의 중독이고 국민에 대한 배덕이다.

이제 기득권을 내려놓고 국민을 향한 선정을 펼쳐야 한다. 이것이 200여 만 명이 매주 벌이는 시위의 본령이고 요구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대의를 외면하며 생뚱맞은 짓을 하고 있다. ‘대선’ 등 당리와 노골적인 잇속 챙기기는 역겨울 정도다.

이런 폐단을 청산하고 인치(人治)가 아닌 서슬의 법치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길거리 청소부나 대통령이나 법 앞에 평등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법을 어기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인생이 망가지는 사회구조를 만들어 건강한 나라로 거듭날 수 있다.

정치권은 국민의 뜻을 받들어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지난 6차 집회에서 보았듯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을 퇴진시키자는 민의에 따라야 한다.
나아가 국민이 주인인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더 이상 국민이 절망과 아픔을 겪는 일이 없도록 해야한다.

‘인간은 나면서부터 자유로우며 평등한 권리를 지닌다’ 이는 1789년 프랑스 혁명 국민의회가 선포한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대한 선언’이다.
전문과 17개 조항에도 권력 분산, 사법권 독립, 언론 자유와 저항권, 조세 평등까지 국민의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다.

같은 시기인 200년 전, 우리는 바른 정치로 백성을 잘 살게 하자는 다산의 개혁은 외침으로 끝났다.
프랑스는 혁명에 성공, 오늘날 자긍심의 국가를 만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200년 전으로 회귀하는 부끄러운 역사를 만들었다.

요즘 대통령 탄핵추진, 국정농단 국회청문회와 특검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
민도에 뒤쳐진 정치권에 프랑스 인권선언 서문을 전한다. ‘인권에 대한 무지와 망각 또는 멸시는 공공의 불행과 정부의 부패를 초래한다’ 모름지기 여야는 정파를 떠나 국민의 뜻을 따르는 ‘종민(從民)’을 촉구한다.

[충남일보 김강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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